제 목 : [특별기획] 여름나기 비디오 1 / 희극지신 喜劇之神 주성치
뉴스제공시각 : 2000/07/19 16:00 출처 :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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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도성>이란 영화가 나왔다. 홍콩누아르도 한물 가고, <지존무상> <정전자> 등 카지노 무비가 반짝하며
지나갔다. 총이 아닌 카드로 승부하는 주윤발의 모습을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였다. 그러던 즈음 나온 <도성>이란
제목에 끌린 것은 그런 이유다. <정전자>에서 주윤발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도신’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다.
섬세한 , 손놀림과 불꽃튀는 심리전을 맛보고 싶었기에 <도성>이란 제목을 자신있게 고른 것이다. 그런데
<도성>은, 그 ‘도신’의 우아하고도 강인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조롱했다 . 어떻게? 오우삼 영화의 슬로모션처럼,
<정전자>의 도신이 등장할 때 화면은 늘 느리게 움직인다. 도신의 표정, 손동작 하나까지 꼼꼼하게 따라간다.
<도성>에도 똑같은 장면이 나온다. 한 가지 차이는 실제상황이라는점. 카메라 기법이 아니라, 주성치 자신이
직접 슬로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 장면을 보고 배를 잡고 웃은 사람은 당장 주성치의 팬이 되었고 저건 뭐야,
라는 탄식과 함께 썰렁한 웃음을 지었던 사람은 주성치라는 이름을 두번 다시 찾지 않았다.
주성치식 재배열, 코미디멜로액션 잡탕영화
호떡집에 불났다란 속어처럼, ‘중국인’이 등장하는 영화는 꽤나 시끌벅적하다. 높낮이가 분명한 중국말 자체가
경망스럽게 들리기도 하고, 워낙 부산스럽게 떠들어대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때문이다. 다 알고보면 별 것도
아닌 걸 호들갑스럽게 끌어간다. 그런데 주성치 영화는 그 중국인들의 과장을, 적어도 1천배는 부풀려놓은 것
같다. <도성>을 본 평론가들은 주성치의 연기 스타일을 놓고 ‘모-레이-토’라고 불렀다. 거칠게 말하자면,
‘상식없음’인데, “일상성과는 거리가 많은 어떤 비합리성, 어떤 광적인 발상, 무언가 터무니없음”이 주성치의
영화에 일관되게 깔려 있는 정서다. 그것은 70년대 허관문의 코미디, 80년대 성룡의 코믹액션과는 다른
90년대의 ‘부유하는’ 코미디였다. 어떤 거리낌도 없이, 주성치는 동서양을 마구 넘나들며 모든 것을 패러디하고 ,
주성치식으로 재배열한다. 주성치의 영화는 어느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잡탕이다. 주성치의 모든 영화는
코미디이며 멜로영화고, 액션영화다. 주성치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홍콩 마스크>나 <홍콩 레옹>같은 잡탕을
만들 수는 없을 거다.
주성치의 영화는 대개 기존 영화의 패러디다.
<도성> <신정무문> <서유기 월광보합> 등 제목부터 짐작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제목은 독창적이어도
보다보면 무수한 영화의 인용이 쏟아진다. 할리우드영화는 물론이고 TV드라마, 광고, 일본영화까지도
무수하게 패러디한다. 할리우드의 ZAZ사단도 <에어플레인> <특급비밀>에서 휘황찬란하게 패러디의 모든
것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주성치는 황당무계함에서 ZAZ사단을 뛰어넘는다. 게다가 도저히 이해할 길이 없는
여운까지 남긴다. <서유기 월광보합>과 <서유기 선리기연>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유기>의 각색이다.
인물은 똑같지만 외전 스타일로 풀어가는 주성치의 `서유기'는 형식과 내용을 완벽하게 파괴한다. 그것이야말로
주성치 영화의 법칙이다. <서유기 선리기연>의 감독은 <동성서취>를 만들었던 유진위다. <동성서취>는
<동사서독>을 찍다가, 똑같은 배우와 무대를 활용하여 설날용 코미디로 만든 영화다. 그런데 정말 ‘생각없는
’코미디 <동성서취>를 보고나면, 이상하게도 <동사서독>의 여운을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서유기 선리기연>
은 <서유기>를 가장한 멜로드라마다. 이 영화를 보다보면 <동사서독>은 물론이고 <중경삼림>까지도 떠오른다.

홍콩영화계의 지존4년, 새 29편 모두 성공
주성치의 영화를 즐기는 일은 간단한 게 아니다. 이소룡 사후 홍콩영화계를 휩쓸었던 허씨 삼형제의 <미스터 부>
시리즈는 슬랩스틱과 허풍을 서민적인 연기에 담아낸 ‘사실적’인 코미디였다.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점점 과장이
심해지고, 허풍이 늘긴 했지만 그래도 <미스터 부>에는 안정감이 있었다. 그런데 주성치의 영화는, 마치 외줄을
타고가는 듯한 아찔함이 느껴진다. 저러다 떨어지는 것 아닐까? 이러고도 영화가 되나?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만든다. 주성치가 가장 흠모한다는 이소룡을 패러디한 <신정무문>을 보고 있으면, 이게 ‘존경’ 맞아?
라는 의문도 든다. 가끔씩 비장한 기운을 내긴 하지만 여전히, ‘갖고 논다’. 그런데 <파괴지왕>을 보면, 주성치식
영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파괴지왕>의 주성치는 오로지 여자 하나를 꼬시기 위해 무술을 배운다.
‘마귀근육인’에게 배운 것은 ‘무적풍화륜’. 간단하게 말하자면 상대를 붙잡고,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거다.
중력의 법칙으로 상대는 만신창이가 된다. 이렇게 황당한 설정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펼치는데도, 결론은
‘영웅의 탄생’이다. 주성치 영화에서는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영웅을 만나고, 연이어 비참한 현실을 만나게
된다. “심각함, 비참함들을 나는 좀 가벼운 ‘우스운’ 것으로 변화시키고 싶다. 이것은 내가 계속해서 견지해나 갈
사상이다.”
사실 주성치의 성장과정은 별로 ‘코믹’하지 않다. 62년 홍콩에서 태어난 주성치는 9살 때 이소룡을 만난다. 그의
첫 번째 영화인 <당산대형>이 개봉된 것이다. 홍콩의 수많은 아이들처럼, 주성치는 이소룡에게 매혹됐고 무술을
배우며 연기자의 꿈을 키운다. 8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송사인 <TVB>에서 설립한 연기학교에 들어간다.
충실하게 연기수업을 받은 주성치는 아이들용 프로그램인 <제트430기>에서 사회를 맡으며 주목을 받는다.
영화 데뷔작은 88년의 <벽력선봉>. <첩혈쌍웅>의 이수현과 함께 출연한 주성치는 금마장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90년 <도성>으로 인기를 얻은 뒤 93년까지 무려 29편의 영화를 찍는다. 그리고 거의 모든 영화가
대성공을 거둔 다. 성룡이 1년에 한두편의 영화를 만들며 ‘신화 ’로 남은 뒤, 홍콩영화계의 ‘지존’은 의심할
여지없이 주성치 였다.
가벼움은 ‘사상’이다
주성치 영화의 핵심은 분명히 ‘주성치’다. 감독의 이름이나, 시나리오 같은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주성치는 대단한 카리스마, 희극적인 재능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배우일까? 주성치의 얼굴근육은 대단히
유연하지만 짐 캐리 정도는 못 된다. 말재간이 좋기는 하지만, 어눌하면서도 의표를 찌르는 우디 앨런만은
못하다. 주성치의 영화를 보다보면,그 웃음의 수원지가 주성치 개인이 아니라 대단히 뛰어난 팀워크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 주성치는 희극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의 장점은 주변 사람들을 주의깊게 이해하고, 계획을 세우고,
그뒤에 자신에게 맞추어 희극적인 효과를 끄집어낸다는 것이다.” 주성치 영화가 늘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똑같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감독도 대부분 비슷하다. 주성치 스스로 가장 호흡이 맞는다고 평가하는
유진위를 비롯하여 왕정, 이력지, 곡덕소 등과 함께 작업한다. 근작인<희극지왕>은 주성치라는 배우의,
맨얼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희극지왕>에서 주성치는 배우를 꿈꾸는 젊은이로 등장한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론을 늘 끼고 사는 주성치는 촬영 현장에서도 너무 심각해서 사고만 일으키게 된다.
뛰어난 배우라고 생각하는 그가 연기지도를 하는 유일한 사람은 동네 깡패들이 다. 사람들이 얕잡아보지 않도록,
무섭게 연기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연히 유명 여배우에게 발탁되어 스타탄생의 꿈도 꾸어 보지만,
대부분의 인생행로가 그렇듯 평범한 사람으로 남게 된다 . “영화계에 몸담은 이래 늘 보고 느끼고 발견한 것들에
기초” 했다는 주성치의 말대로, <희극지왕>에는 ‘영화계’가 그대로 담겨 있다. 영화계에서 연기하는 것을 꿈꿨던
젊은이는, ‘진짜’ 연기를 펼친다. 경찰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연기가 아닌 ‘현실’을 뛰어넘지 못했다. 결국 연기는 ‘스크린’ 안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다.
사실 주성치의 영화에서, 현실을 끌어내고 싶은 욕심도 있기는 하 다. 하지만 <희극지왕>처럼 약간 예외적인
영화를 제외하면 주성치의 영화에서 현실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주성치에게 가벼움은
‘사상’이다. 가벼움의 너머에 세상이 있긴 하지만, 굳이 그걸 스크린에서도 느껴야 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닐까.
무한질주의 끝은 어차피 현실인 것이다.
김봉석/ 대중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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